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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T. 공의를 행한다는 것, 만민이 먹어야 한다는 것
    고요한 2022. 11. 10. 08:49

     

    2022년 11월 10일 목 / 단 4:19-37

     

    > 요약

    다니넬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해 해석해주면서 왕이 공의를 행하기를 권한다. 꿈 해석을 듣고 1년동안 왕은 자신이 가진 것들이 자신의 능력이라 말할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와 왕위가 그에게서 떠나게 하고 꿈에서의 기간을 차게 한 후 다시 왕에게 이전 것들이 돌아오게 한다.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가 교만한 자를 낮춘다 고백한다.

     

    > 묵상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다니엘은 꿈 내용 때문에 왕에게 해석해 주는 것을 망설인 거 같다. 그런 번민을 알고 왕은 번민하지 말라고 하는데 꿈의 내용은 다름아닌 왕이 가진 것들을 빼앗기게 될 때 가 올 것이란 내용이었다.

    꿈의 내용이 왕에게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일어나게 될 거라는 걸 말해야 하는 부담감이 다니엘에게 있었을 거 같고 그래서인지 다니엘은 꿈의 내용이 왕에게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일어나길 원하나이다’라고 얘기한다. 다니엘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것이 왕의 폭력성을 뻔히 아는데, 그리고 왕이란 존재에게 이런 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느부갓네살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이 명령한 것을 행하지 않을 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사람의 목숨을 쉽게 여기지만, 자신의 명령으로 인한 꿈의 해석 같은 경우는 ‘듣기 싫은 소리’라 하더라도 듣고 있는데 특징인 거 같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 상대를 죽이는 왕일수도 있는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 특징에서 소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다 이야기 한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고 왕에게 권하는 것은 다르아닌 ‘공의’를 행함이다. 공의를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공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를 사하는 것(27)’ 그리하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라고 말하는데

    죄를 사하는 것이 공의를 행함, 즉 가난한 자를 긍흄히 여김과 연결되어 그렇게 함으로 죄악을 사하게 된다는 것을 볼 때. 회개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입술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닌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수정하는 책임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해도 왕의 평안함이 장구된다는 보장은 없고, 그것은 ‘혹시’에 머무르는 소망 섞인 추측이다. 그러니 왕은 7년의 고난이 자신에게 머무른 후 이전으로 돌아가는 회복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찌되었건 공의를 행해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겨야 할 의무가 있어 보인다.

    이야기를 듣고도 열두 달간 별다른 변화 없이 지낸 것처럼 보이던 왕은 자신이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힘으로 취했음을 고백하는데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그에게서 왕위가 떠났다고 말한다.

    이때 왕이 느꼈을 어이없음을 상상해본다. 당연히 자신의 힘으로 누리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게 자연스럽고,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감탄하고 있는데 왕위가 떠날거라니... 그런데 그 황당한 소리가 그에게 응하게 되었을 때 왕은 어떠했을까?

    “아!” 하는 깨달음 같은 것이 왔을거라 생각한다. 비록 그가 가진 것들을 다 빼앗기고 초라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깨달을 수 있음이 귀하다.

    때가차 돌아온 왕은 이전에 가진 것들을 다시 취할 수 있게 되고 그는 하나님을 칭송하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할자가 없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35) 삶이란 것이 내 소관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구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구나. 영원히 높을거라 생각했는데 얼마든지 아닐 수 있구나를 알게 된 것 같고, 난 그게 삶을 살아가는 주체자로서 가질 수 있는 능동적 겸손이라 생각한다. 그거 하나를 왕은 깨닫게 된 거 같다.

    아쉬운 건, 이로써 왕이 정말 공의를 행했는지 알 수 없다는 부분이다. 그는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겼을까? 성경이 기록해주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그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길 사건을 경험했던 거 같긴 하고, 또 하나의 아쉬움은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여전히 ‘나’가 많은 존재다.

    여기서 왕이 느끼는 나는 ‘자기 됨’ 즉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에 대한 존귀함이 아닌 오만에 가까운 ‘나’이기에 위험한,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는 나라는 것이 아쉽다.

    그가 오만에 가까운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여기서 고백하듯 나라는 ‘내 나라’ 가진 것들의 광명과 영광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는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겨야 할 의무에 가까운 권유를 지키기 힘들고 언제든 오만한 자리에 갈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왕의 꿈에서 왕은 큰 나무였고 만민의 먹을 것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만민의 먹을 것이 되었을까?

    나는 내가 가진 것에서 내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먹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삶이 바쁘고 목표지향적이 요즘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이 부분을 쉽게 놓치게 된 거 같다. 아쉬운건 미혼모가정을 후원하는데 10월 여성의 생일인걸 알면서 선물을 9월에 준비해놓고 많은 내 일에 밀리고 있었던 것이라던지 11월에 후원하는 두 아이를 볼 수 있는 달인데 아직도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던지

    일부러 찾지 않으면 내 삶 뒤로 밀려버리게 되는 것이 타인과 함께 먹는 것 인거 같다. 나와 나의 가정, 나의 공종체만 중심이 되는 삶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그 부분에 마음을 많이 쓰던 삶에서, 그런 것들이 뒤로 밀리고 있는 부분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의 보살핌이, 그러한 것들을 뒤로 미룬채가 되지 않길 기도한다.

    공의가 곳곳에 자연스럽게 삶처럼 녹아지길 기도한다.

     

    > 삶

    1.늦었지만 선물과 편지를 전달하는 것

    2.오늘 보육원에 연락해 두 아이에게 만남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 기도

    하나님, 가진 열매가 만민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것이라 여겼고 7년의 고난의 때가 찼음에도 여전히 고백은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그입니다. 그래도 소망은 그가 하나님이 언제든 가진 것을 낮출 수 있는 자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이겠죠. 하나님, 공의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게 하시고 공의가 선택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나’가 고유성을 존귀히 여기는 길이 아닌 오만의 길을 걷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오만과 교만이 있다면 그것이 낮춰지길, 언제든 삶 가운데서 내가 다른 이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염두하며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오늘 나와 다른 이들이 내 삶이 아니라 무관심하게 굴지 않게 우릴 인도하시고, 타자, 그리고 더 넓게는 지구 안의 다양한 생물종에 대해서 관심을 갖길 기도합니다. 우리만 잘 사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감에 대해 고민해보는 우리가 되게 인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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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hy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