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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T. 관여할 수 없는 영역 그래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영역
    고요한 2022. 10. 18. 08:55

     

    20221018/화 삼하 18:1-18

     

    > 요약 

    다윗은 군대를 세우고 전쟁에 참여하려 하지만 백성들의 만류로 참여하지 못한다. 전쟁에선 칼로 인한 죽음보다 수풀로 인해 죽은 자가 많다고 하며 압살롬 또한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매달리게 되고 이를 안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게 된다. 

     

    > 묵상

    그렇게 쫓겨다니며 수많은 전쟁을 치른 다윗이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피해 쫓겨다니고 전쟁을 치른다. 그는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백성의 만류로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군사들을 보내며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명령하지만 그의 명령을 어기고 요압은 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인다. 

    사무엘하는 왕인 다윗보다, 인간 다윗의 모습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그의 악함, 그의 연약함, 그의 사랑 같은 것.

    압살롬을 생각하면 전장에서 그를 직접 해치지 않게 막을 수 있었을텐데, 왕으로서의 다윗의 역할도 있었기에 백성들의 만류에 그는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다. 난 그때의 다윗이 정말 불안했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그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길 부탁하는 멤버에 요압이 있다. 그는 요압을 잘 알았을텐데- 요압을 보내면서 불안하지 않았을까?

    그의 걱정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자랑이었던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매달리게 된다. 그 장면이 너무나도 허무했다. 반역을 꿈꾸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며 호기롭게 아버지를 대적하던 압살롬이 고작 나무에 걸려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우습고 애처롭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쩌다 아버지를 대적하게 된걸까? 어떤 것이 그의 마음에 아버지를 향한 악을 지속적으로 품게 한 것이었을까? 암논사건으로 심히 노했지만 무언가를 했다는 액션이 성경에는 없는데 그 때문인가?(삼하13장) 아니면 자신이 암논을 살해한 것을 알아도 침묵한 아버지에게 무능력을 느끼고 오만해진 것일까? 

    무엇이 악의 씨앗이고 그것을 키우고 지속하는지 성경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며 친절하지 않기도 한 거 같다. 

    추측해 볼 수 있는건, 압살롬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윤리적으로는 압살롬보다 나을거 없는 다윗은 하나님을 다시 찾고, 바라보고, 연약함과 악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오는데 압살롬은 그랬다는 구절이 어디에 단 하나도 있지 않다. 

    다윗이 위대한 왕일 수 있는 건 그의 완전함이 아니라 그의 불완전함을 그가 받아들이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찾은 것 일거라 생각한다.

    예전엔 이 대목을 읽으며 요압이 무자비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썩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요압이 상대의 수장을 죽이는 것이 전쟁을 가장 효과적으로 더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죽인 이가 다윗이 그토록 살기 바라는 이였다는 것

    압살롬이 어린 시절부터 비정상적으로 편애하며 사랑한 대상이라는 것이다. 다윗의 편애와 건강하지 못한 사랑의 대상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 다윗을 보면서 부모자식 관계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자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치우침이 없는가? 나는 자녀에게 악을 품게하는 씨앗을 제공한 적이 없는가? 나는 자녀의 악에 침묵하며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게 대응한 것은 없는가? 나는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윤리적 의식에 맞는 태도를 갖추고 있는가? 등을 되돌아본다.

    어느 하나 완전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아이를 온전히 키워낼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내가 전부이고, 내 옳음이 진리인것처럼 할 필요까진 없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과 나의 자녀가 맺을 관계를 신뢰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더불어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 내 약함과 악함 앞에 엎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란, 쉽지 않아. 하나님도 우릴 보면서 그렇게 느끼실 거 같다. 인간이란 자식은 쉽지 않구나. 

     

    > 삶

    1.자녀를 위해 기도하기 (자기 전 기도)

    2.자녀와 관계에서 나의 생각이 전체인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완전하지 않음을 기억하는 것

     

    > 기도

    하나님, 인간 다윗을 봅니다.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전쟁 속에서 압살롬이 죽을까 그가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까요? 하나님을 믿어도 압살롬이 하나님 앞에 큰 죄들을 지었기에 그는 압살롬이 살 수 있을거란 어떠한 신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였을 거 같아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부탁이었고 그 부탁이 무참히 묵살됩니다. 자신의 자랑이었던 머리카락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압살롬을 보면서 나의 잘남이 나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나의 태도를 점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내가 한 것. 내가 해 낸 것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자녀들에게 내가 전부인냥 굴지 않길 기도합니다. 내가 완전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더불어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나의 자녀들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길 제가 기도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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