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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T. 나는 흠이 있더라.
    고요한 2022. 9. 1. 08:46

    20220901 목 / 엡 1:1-6

    > 요약
    바울은 하나님 뜻으로 말미암아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를 하는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하늘에 속한 복을 주시고, 사랑안에서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기 위해 예수를 통해 우리를 자녀되게 하셨음을 이야기하며 거저 주시는 은혜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한다

    > 묵상
    가장 마음에 닿았던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었다. 바울이 이야기 하는 하늘의 복도, 흠이 없게 하심도, 창세 전에 택하심도 모두다 ‘그리스도 안에서’가 강조되고 있음을 보고있다.
    예수 그리스도란 존재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방향성을 찾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란 존재가 되셔서 자신의 무한을 내려놓고 낮아지심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전달하고 가신 메세지가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를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란 존재란 전 세대에 걸친 모두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다. 그로인해 우리 죄가 사해졌다. _ 만으로 멈추는 것은 난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죽기까지 전하고자 했던 그의 메세지나 삶이 흐려지는 것이 말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대체교사로 근무하면서 과연 내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가 있는가? 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이전처럼 말씀을 묵상하지도 않았고,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말씀묵상과 기도라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에 이미 주신 말씀들이 있고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가 있었으니 행위의 문제는 아니였다. 다만..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이미 주신 말씀들이 살아있었나? 하는 문제였다.
    대체적으로 나는 공의롭기 위해 노력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는게 결론이다. 누군가는 수월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월치 않았다.
    맡아본 반 중에 이렇게 수월하지 않은 캐릭터가 많은 반도 처음이었고, 나이 마흔먹고 직장내에서 묘한 분위기며 따돌리는 듯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 (그건 중2때 끝난건줄 알았는데)
    사회란 곳은 생각보다 비열하고 비겁한 구석이 꽤 많았다. 나도 함께 비겁하고 비열해지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나를 괴롭히는 시선을 거부하는 것 정도였고- 쉽지 않은 캐릭터가 대다수인 아이들을 공의롭게 대하는게 최선이었다.
    진심을 다해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날 더 힘들게 한다고 더 차별하거나 하지 않으려 했음을, 그게 내가 갖는 위안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성인과 달라 자기들끼리 갈등이 숱하게 일어났지만 그 속에서 나는 너무 피로했지만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와 아이들은 언제나 안아주고, 웃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였다. 그 점이 나는 늘 놀랍고 (육아에서건 교육 현장에서건) 그 점이 아이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자,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습인 거 같다.
    나는 그것을 잃어버린 자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 말이다. 사랑 없는 공의는 무엇인가? 어쩌면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수학공식이나 기계와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이제는 직장을 나가지 않으니 이런 여유있는 생각도 가능한거지- 다시 돌아가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고 자신도 없다.
    어찌되었건 이번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만들고 빚어가신 달란트, 가능성, 내가 기쁨을 느끼는 부분이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발견한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발견한 것이 가장 큰 배움이다.
    어쨌든 난 여전히 흠이 있는 존재다. 여실히 드러났지뭐

    > 삶

    1. 흠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 살아가는 것. 상황과 사람앞에 겸손하고 아이들에게 배워야 하는 점이 있음을 아는 것
    2.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고,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알았으니 기도하자.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은, 내 힘으로 되지 않더라

    > 기도
    하나님, 그리스도가 되시고,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하시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하나님, 너무 안되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흠 없음이, 특히나 저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 제 힘으로 되지 않아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감정에 충실하고 상황에 유연하고 능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어른인 저보다 더 사랑이 많은 아이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지칠줄 모르는 하나님처럼 지치지 않고 다시 사랑하고 다가오는 존재들 이더라고요. 그 사랑을 받기만 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는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나눠주지 못했던 거 같아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리고 제가 저를 더 알게 해주시고, 내가 가야할 방향성과 달란트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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