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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고요한 2022. 3. 23. 08:29
20220323.수 / 레 14:1-20
> 요약
피부병으로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해진 경우 그것을 확인한 후 정결의식을 갖고 완치자가 드려야 할 제사에 대해 설명한다.
> 묵상
피부질환으로 인해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외롭고 고된 시간을 보냈을 이가 정결하게 된 후 그의 정결함을 확인한 다음에 그가 정결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의식이 시행된다. 몸의 모든 털을 민 완치자는 자신의 피부에 드러나는 피부병이 없음을 모두가 알 수 있었을 거다. 어떠한 질병(질병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떠한 상태)을 한 자를 가까이 할수도 없었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이런 행위는 일종의 선포와 받아들임이 아니였을까?
그리고 완치자는 자신의 몸이 완치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 후 제사를 드림으로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이고 내가 속해 바라봐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 했을거다. 지금과 구약의 제사는 상당히 다른 예배의 형태이지만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난 나를 돌아보고 위로 받고 평안을 느끼는 정서적 결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요소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완치자는 제사를 드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제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힘들었던 치료기간의 시간들을 위로받고 이제 새로 살아갈 힘을 얻으며 또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한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 사람들 안에서 살아가면서 한동안 겪을 작고 큰 상처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힘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릴적부터 특별히 누군가에게 선입견이 없는 편이었던 나는 다양한 이들을 두루 잘 지낼 수 있었던 거 같다. 그건 참 감사한 달란트이고, 그 달란트는 나란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꽤 의미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작고 크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성향, 모습 같은 것들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있다.
난 이스라엘 사회적 공동체가 완치자를 대할 때 초반에는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한동안 부정했던 자였기 때문에 그를 수용하는게 쉽진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전처럼 피하진 않더라도 굳이 일부러 가까이 하고 싶진 않은 상태들을 경도의 차이는 있을 뿐 겪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보니 ‘아, 이는 정말 부정하지 않구나. 그 병이 나에게 오지 않는구나.’를 경험으로 알게 되었을테고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다시금 사고가 바뀔 수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즉, 시간이 양쪽 모두에게 필요했다고 본다.
나또한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굳이 일부러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모습과 상황’
최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어떠한 모습을 봤다. 그 모습들로 인해 실망이 되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그들의 모습이고 개인적 사정인데 그런 것에 마음이 변화하는 내 모습이 의아했다.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그 존재들의 캐릭터를 규정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모습을 다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게 참된 사랑의 시작이고 거기서부터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그러질 못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할 때 내가 드는 의문,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 하지 못한다. 솔직하지 못함은 내 안에 뒤틀려 비난이 되거나 정죄가 된다.
많은 악은 내면에서 완성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내면에서 그치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지만 (외부로 일일이 다 표출한다면 정말 끔찍하다) 대신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감추기 참 좋은 거 같긴 하다.
이런 내 마음이 레위기의 표현에 따르면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기도가 필요하고,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고,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죄들이 모르고 지었던 죄, 그렇지만 어떠한 죄도 가볍지 않으니 회개해야 할 속죄죄가 아닐까?
> 삶
1.관계 속에서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바라는 모습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금의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2. 회개와 기도
> 기도
하나님, 많은 죄들을 나의 내면에서 만들고 완성시켜 나가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누군가의 어떠한 모습에 ‘그건 왠지 그래.’하면서 멀리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분별을 정죄와 비판을 위해 하지 않게 절 인도해 주세요. 모르고 지었던 죄도 회개하며 나아가길 기도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세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바라봄을 함께 바라보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나또한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겸손함을 늘 잊지 않는 제가 되길 바랍니다. 한동안 공동체와 분리되어 있다가 다시 속한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고, 그들과 공동체가 건강하게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써 주세요. 우리 사회 안에서도 분리되어 함께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이가 있다면 우리가 손을 뻗어 그를 안아주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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