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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T. 누군가의 고통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님을
    고요한 2022. 3. 22. 08:40

    20220322. 화 / 레 13:40-59

     

    > 요약

    머리의 피부병과 물건에 생긴 피부병 증세와 비슷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한다.

     

    > 묵상

    대머리에 난 피부병 중에서 부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설명하며 부정한 피부병이 대머리에 난 자들은 애도의 표현과 비슷한 방식을 취한 채 자신을 부정하다 외치며 공동체와 거리를 두고 격리되게 된다. 물건 또한 부정하다고 의심 되는 것들을 분리해서 관찰하는 기간과 함께 부정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처리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부정한 피부병을 가진 자가 애도의 행동을 한 것은 실제 그 병으로 죽은 이들이 많아서 오는 슬픔 이었을까? 피부병 자체가 죄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죽음이란 것이 다른 건강한 이들보다 가까움에 있어서 애도하게 된걸까? 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으로 그의 상태에 대해 공동체는 인식하기 수월했을 거 같다. 이것이 부정하게 된 자 자체를 놓고 보면 어찌하면 참 비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정하게 되지 않은 것을 숨기지 않은 용기 또한 난 놀랍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이런 규정들이 결국에는 부정함을 다른 이들에게 옮겨 더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함이었으니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수를 배려하기 위해 병을 가진 자가 이런 행동을 해야하는게 개인적으로는 가혹하게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위생, 의료 등이 제한 적이었던 당시 시대상황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또한 제한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놀라운건 부정한 것의 구분, 관찰, 분류로 인한 당시 배려를 초월한 예수님의 행동 같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다가갔고 함께 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부정함이 전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건 전체를 위한 기준의 제시이지 그 한 개인의 존재를 대할 때는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구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 이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나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부정하다 여겨지는 한 존재를 대할 때도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것, 그리고 가까이 해 이웃이 될 수 있는 것들과 같으나 초월적 사랑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규정짓고, 그 규정안에 맞지 않아서 생각으로 말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죽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그런 색깔이 분명했던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유연해졌고, 사회 속 개인이란 존재에는 유연했던 부분들이 사회적인 문제에서 대립되는 의견을 보이는 구조라던지 서로 다른 정치적 색깔을 가진 정당 이라던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내 안의 규정을 정해두고 어떤 대상을 혐오하거나 절대적 부정처럼 간주하던 것들의 부분은 유연해진게 분명하다. 그것을 옳고 그름이 없거나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옳고 그름이 있지만 그럼에도 각자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차이가 생겼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 

    이런 부분은 하나님을 믿으며 크게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이런 변화가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아닌 것에 아니라고 목소리 내지만 극단적 감정에 몰입되어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원망하고 분노하고 혐오하는 것에서 나의 감정이 머무르고 그치지 않게 하심에 감사하다. 더 나을 방법을 찾아보는 것, 고민해 보는 것, 배경을 이해하려고 다가가 보는 것, 그런 것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 삶

    1.말하기 전에 오늘도 들어보기 

    2.내 안의 부정한 것들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기,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며 신중해야 하는 것

     

    > 기도

    하나님, 부정한 것과 아닌 것들의 분류를 주신 것이 부정한 것을 하게 된 존재의 영원한 배척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부정한 것의 확산을 막고, 이것이 전염되는 것이라면 부정했던 자에게 자신으로 인해 생긴거 같은 괴로움과 죄책감의 크기가 커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규정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지만 자신의 부정을 말하며 외치는 이들 개인이 겪을 슬픔의 무게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그런 이들이 있다면 다가가 하나님 위로해 주세요. 그리고 각 개인을 대할 때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잊지 않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초월적 사랑, 그리고 개방성이 우리에게 임하게 우릴 이끌어 주세요. 또한 나의 부정에 관심을 기울여 그것들이 전체가 되지 않도록,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력을 미치지 않도록 언제나 신중하게 고민하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도 말하기보다 듣게 하시고 말해야 할 때 말을 피하지 않게 제게 인내와 용기와 대상에 사랑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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