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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T. 약속의 이행
    카테고리 없음 2022. 5. 9. 08:40

    20220509. 월 / 삼상 1:19-28

     

    > 요약

    한나는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 짓고 서원제와 매년제에 올라가지 않고 남편에게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확언한다. 후에 아이가 젖을 뗀 후 한나는 제물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하나님께 아이를 드릴 것이라 한다.

     

    > 묵상

    한나는 당시 아들이 없어서라는 이유 때문 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이 없는 다른 여성에게 무시받고 멸시 당하는 피해여성 이었다. 그런 그녀의 고통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하나님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듯 임신이 되었다기 보다 ‘하나님께서 들으신’이라는 사무엘의 이름도 그렇고 사무엘의 삶을 봐도 그렇고 한나란 한 여성의 고통 중의 고백이 결국 가장 원하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고백이 나오기까지 기다리셨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한나의 성숙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주시고 사무엘을 통해 일하고자 하심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나로서는 한나가 사무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런 기도를 해도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고, 사무엘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께 드려지는 존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 궁금하다.

    우리가 결국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리지만 그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어머니의 서원으로 젖을 먹던 순간을 제외하곤 통채로 전체를 헌신하듯 드려지는건 좀 다른 부분인 거 같다.

    어쨌거나 매년제와 서원제를 가족들이 드릴 때 한나는 드리지 않는다. 유달리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한나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인 젖을 먹이는 시기에 한나는 아이와 둘이 있음을 선택했고 성경은 그것을 나무라는 느낌이 없다. 결국 그녀의 서원과 서원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앞으로 있을 괴로움 (어린 자녀를 떼어 놓으니) 자녀의 소중함과 함께할 수 있는 제한적인 귀한 시간 등을 하나님은 이해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원기도를 두번의 경험으로 인해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서원기도 혈기가 충천해서 막나가듯 하나님과 맞장을 뜨지도 못하면서 떠보겠다는 식의 서원일거라 여기지 못했던 서원은 결국 내 삶에서 이루어졌다.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하는 심정이 있어서 두번다시 서원처럼 느껴지는 비슷한 모든 기도들은 하질 않았다.

    그런데 요즘 서원기도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남편의 끊어지지 않는 죄를 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끊어내고자 하는 눈물의 기도가 필요한게 아닐까? 하는 뭔가 나답지 않은 생각도 했고, 서원이란 단어가 생각 났을 때 그것이 끊어지길 바래서..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서원이 아니라 그만큼의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며 성숙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무엇이건 감당할 각오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서원과 함께 연결지어 생각된 부분이었다. 정확히는 내 남편에게 그런 존재가 필요하고 지금 그런 존재는 곁에 있는 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무서워서 그런 비슷한 기도를 할 수도 없고 ‘그건 남편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싶으면서 ‘하나님 변화시켜 주세요.’라는 다오다오 기도를 하는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성격상 다오다오 기도를 못하기도 해서 그것도 쉽진 않지만) 

    어찌되었건 중요한건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고 한나는 고통중에 성숙해서 가장 원하던 것을 헌신할 각오를 갖게 되었으며 실제 그 약속을 지켜간다. 나에게도 고통중에 갖는 성숙함, 원하던 것을 결국에는 헌신할 각오, 무엇보다 약속을 지켜나가는 담대함이 있길 기도한다.

     

    > 삶

    1. 기도

     

    > 기도

    하나님, 자녀를 갖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없는 것도 서러운데 받고 있는 멸시는 한나를 고통중에 빠트립니다. 그 고통의 감정은 그저 고통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하나님 앞에 나가 엎드리게 하는 겸손함을 갖추게 하고 고통의 시간은 가장 원하던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헌신의 각오를 하게 그녀를 변화 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셔서 태어나게 되었다고 그녀가 신뢰하는 사무엘. 하나님과 한 약속을 이행해 나가는 한나가 놀랍습니다. 얼마나 아이랑 더 함께 있고 싶었을까요? 하나님, 저도 내가 더 누리고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님께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없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제가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고통의 감정과 시간이 겸손함과 삶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머니의 서원으로 자신의 삶이 결정된거나 다름 없었을 사무엘. 그 한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분명히 만지고 회복시켜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사무엘이 걸어간 그 삶이 처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었다 하더라도 결국 그 삶이 그에게 기쁨이 되었길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 각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어 헌신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또한 기쁨이 되게 우릴 이끌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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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hy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