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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와서? 이제와서 라도
    카테고리 없음 2022. 3. 26. 15:37

    내가 다니는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이다.

    교회라는 이름이 붙어서 교회라고 하는데 마치 작은 공동체 같은 모습의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작은 교회이고 성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 목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을 가진 목회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대형교회에선 쉽지 않은 것들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는게 작은 우리 교회의 장점인거 같다.

     

    우리 교회에선 매달 마지막 주 성도가 그날의 예배를 인도한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했던 말씀과 함께 간증식의 나눔을 하는게 그날의 예배인 셈이다.

    목회자의 본문설교나 그로인한 교리와 시대적 배경등을 들을 수 있는 일반 설교와 또다른 맛이  예배엔 있다.

    교회가 작으니 몇 되지 않는 성도이지만 그럼에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는데 그날의 예배를 통해서

    ‘아, 저 자매에게 저런 경험이 있었구나. 그 안에서 이렇게 시선이 변화 되었구나.’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코로나가 생길 때쯤 교회를 옮긴 나로서는 교제에 제한이 있는데 이런 나눔은 정말 꿀같이 감사하다. 

    마치 그의 삶에 나있는 창으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우린 이것을 equipping!!(이퀴핑) 이라 부른다.

     

    작년 자매모임에서 이퀴핑이 가능한 자매가 있는지 물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속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예정은 3월이었었지만 교회내에서 스케쥴이 조정되면서 언제인지 기약할 순 없었지만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고 3월달 하기로 되어있던 자매의 컨디션이 안좋아 나에게 급히 연락이 왔다.

    나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고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자매팀 총무에게 연락이 왔고, 연락이 올 때부터 알았다. ‘왠지 이번에 내가 안하게 될 거 같다.’라는 걸

    그런 것을 알 수 있는건 경험에 의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는 거 같고,

    나에겐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 신앙생활 중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컨디션이 안좋았던 자매가 컨디션이 좋아져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자매가 이퀴핑을 위해 미리 다 준비를 해놓았다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적인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으니 특별히 서운함은 없었다.

     

    그 일이 있었던 날, 나는 몇 년 동안 별에를 보내고 싶어하던 유치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그 곳의 교육관이며 프로그램, 식단까지 모든게 쏙 마음에 드는 곳이었지만 원비면에서도 그렇고 기존에 형성된 공동체성으로 인해 입학하려면 학부모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문턱이 높기도 하고, 그들의 그라운드가 기득권처럼 여겨져 입학을 포기한 곳이었는데 어찌되었건 그 곳을 지나고 몇 일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난 그정도도 보내주지 못하는 부모인건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들은 왜이리 한결같은가?’ ‘우리에게 선택의 폭은 이렇게 좁은건가?’ 등의 이유로 기분이 좋지 않은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막연히 그것이 원인일거라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봐도 현재 유치원이 프로그램도 식단도 교육관도 그저 그렇지만

    거리상으로 가깝고 담임선생님이 무척 좋고, 아이도 그러대로 즐거워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이유로 이렇게 마음이 언짢은게 아닐텐데?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던 거 같다.

     

    그러다 정말 문득 갑자기 다 잊고 있던 중학생 때 기억이 났다.

     

    중학생 때 친한친구가 함께 교회에 다니자고 해서 교회에 나간적이 있었다.

    교회의 분위기도 그곳에 속한 사람들의 무드도 나완 이질적이라 느껴졌다.

    그들이 가진 공통적인 느낌, 그 공통적인 느낌을 가지고 다가오는 전체적인 친절함도 묘하게 별로였다.

    그래도 그럭저럭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공연 비슷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교회에 제대로 속하지도 못하는데 무언가를 한다는건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나서지 않고 누가 무얼할지 정하고 있을때 나는 머뭇머뭇 뻘쭘히 앉아 있었던 거 같다.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던 친구는 교회에서 적응도 잘하고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다.) 교회활동도 잘하는 친구였다.

    친구가 나에게 “혜진아, 너 수화 해볼래?”라고 제안했고, 그거라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러겠다 대답했고 그날 이후 나는 잠을 줄여가며 수화를 외웠던 거 같다.

    그런데 우리 수화팀이 아니였던 아이가 공연을 얼마 안 남겨두고 뒤늦게 수화팀에 들어오고 싶어했다.

    벌써 우린 무대에 서는 위치까지 다 정해 놓았는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나에게 빠지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내가 제일 늦게 왔고 내가 제일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주눅이 드는 순간이었는데 그때 친구가 나에게 안해도 되겠다고 물었다.

    내 친구는 나를 빼고 싶었다기 보다는 내가 수화를 하는게 부담 이었을거라 배려하는 차원에서 였던 거 같다.

    그 날의 기억이 났고, 정말 그 기억이 나는 순간 마흔살의 내가 열다섯 살의 나에게 물었다.

    ‘응? 이제와서?’ 

     

    정말 그랬다. 이제와서? 그게 왜? 어떻다는 건데? 

    설마, 이런 것 때문에 기분이 안좋았나?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는건 그냥 비슷한 상황으로 인해 기억이 수면 아래에서 낚여 올라 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건 기억난 사건이긴 해서 숲에와 뜰에랑 맛있게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이 시간은 주로 우리 셋의 수다시간이다.) 기억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얘들아, 엄마가 최근에 기분이 계속 안좋았잖아? 처음엔 유치원 때문인가? 했는데 아닌거 같은거야.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는데 어떤 기억이 났거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아무렇지 않았다. 

    90년대의 기억의 일부를 그때로부터 그냥 여기 이곳으로 옮겨 놓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냥 콱! 하고 눈물이 터졌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엄만 그때 그게 너무 하고 싶었어. 하고 싶은데 하고 싶다고. 나 연습 많이 했다고 말하질 못했어. 내가 못하게 된 것 보다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게 속상했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분명 이런 워딩을 하고 있는게 나인데 나의 컨트롤을 벗어난 무의식의 내가 나와서 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마흔의 김혜진은 “응? 이제와서? 그게 왜? 어떻다는 건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열다섯의 김혜진이 마흔의 시간으로 넘어와 “이제라도 말하고 싶어. 나는 그때 그게 정말 하고 싶었어. 열심히 연습했는데 내가 나가게 되서 속상했어.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도 못했어.”

     

    글로 옮겨 적으니 잊고 있었던 장면이 또하나 낚여 올라온다. 

    나는 수화팀에서 나와 교회의 긴 의자에 앉아 수화팀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 아래에서 하얀옷과 하얀장갑을 끼고 수화를 하는 아이들

    새로 들어온 아이가 한동작 한동작 익숙치 않아 틀릴 때마다 ‘나는 저 동작을 알고 있는데…’하면서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말을 삼키며 조명이 꺼진 의자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나는 괜찮지 않았는데 왜 친구에게 괜찮은 척 했을까?

    괜찮은 척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해 질까봐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걸 선택했다. 

    그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고민하거나 막아볼 기회 같은 것이 없이 말이다.

     

     

    지난 일들에 대해 대부분의 것들을 기억하고 분류하고 있고 내가 날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것이 초감정 같은 거구나 싶다.

     

    열다섯의 김혜진은 계속 날 부르고 있었을까?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노라 말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이제라도, 그때의 나를 알아줄 수 있어서 좋다.

    "고마워, 열다섯의 김혜진아. 부르고 있어줘서."

     

     

    2022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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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hye 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