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약자와 함께했던 약자의 아름다운 강인함
20220502.월 / 룻 1:15-22
> 요약
나오미는 룻도 오르바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만 룻은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 함께 머물겠다고 굳은 결심을 보여준다. 둘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은 떠들자 나오미는 이름을 빗대어 자신의 처지와 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돌아온 때는 보리 추수가 시작된 때의 베들레헴이다.
> 묵상
내 삶에 있어서 룻기는 큰 의미가 있다. 이혼을 하고 재혼을 고민하던 때에 룻기를 묵상하고 있었고, 당시 나의 믿음은 묵상을 하면서 ‘하나님 재혼을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와 같은 고민에 대한 결정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묵상이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내 삶의 순간마다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가치관과 중심으로 두는 것과, 하나님이 내 모든 순간에 결정을 내리길 바라는 것은 결이 다른 것 같다. 난 당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결정내리면 후회없는 선택이 될거라고 생각했고 그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닌 나였다.
룻은 어머니를 붙잡으며 자신이 중심이었는지 그 안의 하나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씀을 보면 확실한 것은 희망이 없는 나오미를 홀로 두지 않았다는 거다.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입장에서 본인도 사회적 약자가 되었는데 룻은 자신처럼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홀로두지 않는다. 룻은 결혼이란 제도로 하나님을 받아들였고 그녀에게 성령님이 함께하셨기에 룻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고 그 선택은 놀랍게도 연약한 어머님 때문이다. 그리고 약자를 함께 책임지는 그 모습은 결국 하나님이 추구하는 세계의 한 모습이라고 받아들여 진다. 룻기가 사사기와 사무엘상 사이에 있는 것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나오미란 여인의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풍족했으나 돌아올때는 비어 돌아온다. 개인의 서사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렇지만 민족적 서사는 기근에서 추수의 때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비어있는 처지가 되었을 때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추수해서 나를 먹이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율법으로 인해 실제적으로도 룻은 이삭을 주워 어머니와 살 수 있었다.
최근 남편이 일으킨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드러나 알게 되었다. 그걸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 남편과 나는 나오미와 룻처럼 함께 함을 선택했지만 일으킨 문제의 근본적인 것들을 난 해결할 수도 없고, 나의 마음은 몹시 가난했다. 7년만에 공황장애가 왔고 아무렇지 않다가 불현듯 호흡이 곤란해지고 알 수 없는 고통속에 놓여있는 날 본다.
오늘 룻기를 보면서 과거 결정을 위해 답을 내려달란 식으로 묵상을 하던 나와 달리, 연약한 나의 남편 한 사람을 놓지 않고 함께하는 내가 룻의 강인함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룻처럼 연약한 자지만 연약한 누군가를 포기치 않고 함께가는 사랑, 그 강인함은 하나님이 주신게 아닐까?
첫번째 가정에서 나는 그 강인함을 이성으로만 갖고 있었고 실제의 나는 갖추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랑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다. 괴로운 일이 발생했고 그것이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는 똑같았지만 그 안에 나란 존재, 그리고 나를 포함한 자녀들의 정서적 상태와 반응, 그리고 나를 구성한 것들이 달랐다.
우린 확실히 추수의 때를 갖추고 계신 하나님 품 안에서 텅 빔을 경험하고 있었다. 몇 일전의 나도 나오미처럼 ‘나의 팔자가 박복하다’ 그런데 그 원인은 모르겠다. 의 상태였었다.
난 나의 고백이 나의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겠다. 분명한건 풍요를 지나도 텅 빔을 지나도, 연약한 한 사람을 버리지 않고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살아냄으로 보여주셨던 그 분의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 삶
1. 지금 힘듦을 기도 그리고 남편을 위해 기도
2. 나에게 이삭을 남기는 공동체가 있음에 감사하다
> 기도
하나님 어머니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떠나지 않았던 룻의 모습이 제게도 있음에 감사합니다. 모르고 했던 신앙생활에도 알고 노력하며 했던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함께 하셔서 저를 성장시켰고 저를 강건케 하셨음을 봅니다. 개인적으론 풍족함에서 텅 비어버렸지만 기근의 때에서 추수의 때에 그녀들이 돌아와 살아갈 수 있게 하셨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한 하나님의 율법과 그것을 지키는 공동체가 있었기에 이들이 살아낼 수 있었음이다. 어느 한명 어느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 모든 것이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함으로 이루어짐을 봅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텅 비었고 나의 이름은 왜 혜진인가 어디가 은혜인 것인가 모를 것들 투성이지만 이런 상황중에도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빛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내 삶이 은혜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제 상함 마음을 찾아와 위로하여 주세요. 충격으로 인한 공황장애 또한 다시금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악한 사고와 습관에서 떠날 수 있게 그를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